14F 뉴스레터에서 그동안 환경과 관련한 이슈를 여러 번 전해드렸죠. 그럴 때마다 제작사원에게 고민이 있었답니다. 기후 위기 소식을 전하면서 ‘우리가 당장 무엇부터 해야 하는데?’라는 질문에 같이 고민해 본 적이 있는지를요. 그래서 지구를 위해 앞장서고 있는 분을 만나 우리가 동참할 만한 것은 무엇인지, 환경을 위하는 삶은 어떤 삶인지 알아보고 싶었습니다. 10월 끝자락에 소개할 이달의 사원은 제로 웨이스트와 비건의 삶을 살고 있는 이은재 작가님이에요. 이번 편에서는 사원의 책상이 아닌 친환경 라이프를 대표할 아이템을 소개해 주셨어요.
어떤 일상인지 더 궁금해지지 않나요? 우리에게도 적용할 수 있는 친환경 꿀팁 가득한 인터뷰를 바로 시작할게요.
안녕하세요 작가님
14F를 찾아주셔서 반갑습니다. 인사해 주세요!
안녕하세요, 저는 평범한 초등 교사였는데 2017년부터 어쩌다 시작한 제로 웨이스트 생활에 2021년부터는 어쩌다 비건 지향 채식인이 되어 ‘제+비’로 진화한 자칭 ‘환경힙스터’ 이은재입니다. 2022년에 제 이야기를 알리고 싶어서 〈별일 아닌데 뿌듯합니다〉라는 환경 에세이를 출간했어요. 올해는 서울대 대학원에 환경교육전공으로 입학해 열심히 공부하고 있습니다.
제로 웨이스트와 비건은 어디까지를 말하는 건가요?
제로 웨이스트는 좁게 말하면 ‘쓰레기를 만들지 않는 생활’이지만 저는 조금 더 넓은 의미로 봐요. ‘버릴 것이 없는 삶’ 혹은 ‘낭비가 없는 삶’이라고요. 쓰레기를 되도록 만들지 않으면서 물, 전기, 석유 같은 에너지 자원도 낭비 없이 꼭 필요한 만큼만 쓰는 삶, 저는 이런 것이 제로 웨이스트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비건은 채식의 여러 단계 중 하나인데 고기는 물론이고 동물성 해산물, 유제품, 알류를 배제한 식생활입니다. 제로 웨이스트만 열심히 하던 시절에 어느 책에서 “비닐봉지 하나 안 쓰는 것보다 고기 한 접시 안 먹는 것이 환경에 더 도움이 된다”라는 문장을 읽고 비건 지향 채식을 시작하게 되었어요. 실제로 여러 논문을 읽어보니 식품 부문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가 총 온실가스 배출량의 34~37%를 차지하고 있으며, 전 세계 사람들이 2050년까지 채식을 한다면 식품 부문 온실가스를 최대 70%까지 줄일 수 있다고 해요. 식생활은 지극히 개인적인 영역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기후 위기와 깊이 관련되어 있죠.
들을수록 실제 작가님의 라이프스타일이 궁금해지는데요?
어떤 물건이 필요하면 가장 편리한 방법보다 가장 쓰레기가 나오지 않을 방법이 무엇인지 고민해요. 택배를 받은 후에는 포장 쓰레기가 나오고, 대형 마트에 가면 거의 모든 것이 번쩍이는 비닐과 플라스틱으로 포장이 되어 있잖아요. 그래서 조금 번거롭더라도 전통시장에서 장 보기를 해요. 시장에서 비닐 포장이 없는 곳을 찾고, 사장님이 비닐봉지를 뜯기 전에 재빠르게 준비한 주머니나 통을 내밀어요.
굉장히 수고로워 보이죠? 하지만 송장과 테이프를 뜯고, 상자를 펴고, 집안에 쌓아두다가 정해진 날짜에 맞춰서 양손 가득 재활용 쓰레기를 들고 큼큼한 냄새가 나는 분리 배출장에 가서 ‘이건 어디에 버려야 하지?’ 고민하며 배출한 수고로운 기억이 있잖아요. 저는 제로 웨이스트를 한 뒤로 물건을 살 때 수고로운 대신 쓰레기 뒤처리에 드는 수고가 확 줄었어요. 제로 웨이스트를 하든 안 하든 어차피 한번은 수고롭다면, 이왕이면 쓰레기를 안 만드는 쪽으로 애쓰는 것이 더 가치 있다고 생각해요.
비건 지향 채식인으로 살 때는 확실히 가공식품보다는 저렴한 제철 채소를 사서 직접 요리하기 때문에 식비도 많이 절감되고 몸도 더 건강해진 것 같아요. 하지만 집 밖에 나가면 채식 옵션을 찾기 어려운 경우가 정말 많아요. 타협을 해야 하는 경우가 종종 있어서 저는 식품별 탄소 배출표를 참고해서 원칙을 정했어요. 탄소 배출이 가장 높은 소고기, 양고기를 포함한 각종 육류, 소고기 못지않게 탄소 배출이 굉장히 높은 유제품, 먼 곳에서 수입했기 때문에 푸드 마일리지가 높은 연어, 새우는 선택하지 않으려고 해요. 그 밖의 식재료는 가끔 먹기도 해요.
깔끔하게 분리배출을 잘 하면 괜찮지 않을까요?
저는 두 가지 질문을 하고 싶어요. 1) 내가 분리배출하는 것들은 어디로 가는가? 2) 내가 배출했던 것이 나에게 되돌아온 적이 있는가? 2018년, 중국에서 쓰레기 수입을 안 한다고 했을 때 우리나라에 소위 ‘쓰레기 대란’이 일어났잖아요. 그때 처음 생각해 봤어요. ‘내가 열심히 버린 재활용 쓰레기가 지금까지 어디로 갔던 걸까?’ 그리고 우리가 ♻분리배출이라고 하면 돌고 도는 순환을 떠올리는데 늘 일방적으로 버리는 역할만 담당하지 않았나? 생각해 보니 제가 일부러 재생 플라스틱을 산 기억이 없는 거죠. 그리고 우리나라 법에 식품을 감싸는 비닐, 플라스틱은 재생으로 하면 안 된다는 법이 있대요. 그러니까 그 비닐은 모두 새 플라스틱인 거예요. 이런 생각들을 하니 분리배출의 한계가 보이더라고요.
음식을 포장할 때 가져간 통에 음식을 받아오는 걸
‘용기 내기’라고 하던데 주변 반응은 어땠나요?
‘용기 내 챌린지’ 정말 추천하고 싶어요. 식당 사장님들이 싫어하지 않을까 걱정이 됐지만 의외로 ‘환경 운동가’, ‘야무진 새댁’이라며 많이 격려해 주셨어요. 저의 영향을 받아서 남편도 ‘용기 내’에 동참하고 있는데 얼마 전에는 남편이 야식을 먹고 싶다며 자연스럽게 통을 꺼내 들고나가더라고요. 그런데 남편이 만두가게에 가서 용기를 내니 사장님께 예쁘다고 칭찬받아 찐빵 2개를 서비스로 얻어 왔지 뭐예요!
불편하고 오래 걸려도
제비 라이프를 이어가는 가장 큰 이유는 뭘까요?
‘지구 생태 용량 초과의 날(Earth Overshoot Day)’이라는 개념이 있어요. 지구인들이 1년 동안 쓸 수 있는 자원의 양이 정해져 있는데 그것을 국가별로 언제 다 소진하는지 매년 발표해요. 한국인들은 올해 몫을 지난 4월 2일에 다 소진했다는데요. 전 세계가 한국인처럼 자원을 쓰고 살려면 지구가 3개 이상 필요하다는 계산이 나오죠.
제가 제로 웨이스트도 하고 채식도 하면 ‘대단하다’, ‘불편한데 굳이 왜 하나’ 이런 반응도 많이 듣는데 솔직히 저는 아직도 엄청 호화롭게 살고 있다고 생각해요. 영양가 있는 음식을 배부르게 먹고, 가전제품도 쓰고 조명도 켜고, 컴퓨터에 아이패드도 갖고 있고, 엘리베이터도 타고, 이동할 땐 지하철과 버스도 타고요. 제가 아무리 제로 웨이스트를 하는 비건 지향 채식인이라고 해도 지구 전체로 보면 자원을 많이 쓰는 축에 속해요. 그리고 우리가 자신에게 할당된 지구 자원의 몫 이상을 쓰고 있다면 그건 후대의 몫을 끌어와서 쓰고 있는 셈이에요. 조금이라도 더 자원을 아끼고 쓰레기와 탄소 배출을 줄여 지구와 후대에 빚을 지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은 결코 대단하거나 불편한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해야 할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해요.
우리의 일상생활에서도 탄소 배출을 많이 하고 있는 건가요?
제가 과제로 ‘탄소 일기’라는 걸 써봤어요. 내가 한 달 동안 어떤 활동으로 탄소를 얼마나 배출했는지 자세히 기록하고 엑셀로 계산했어요. 그런데 저 한 사람이 한 달 동안 탄소를 200kg 넘게 배출했더라고요. 자가용도 없고, 고기도 안 먹고 제비를 실천하며 나름 친환경적으로 산다고 생각하는데도요. 엘리베이터 타기, 버스 타기, 불 켜기, 컴퓨터로 작업하기. 이런 것만 했는데 말이죠. 엘리베이터 타기, 버스 타기, 조명 켜기, 컴퓨터로 작업하기, 주말에 남편 차로 나들이 가기 이런 소소한 생활들이 모여서 거대한 탄소 배출이라는 결과가 나왔어요. ‘쓰레기’, ‘고기’처럼 눈에 잘 보이는 것 외에 눈에 보이지 않는 탄소도 신경을 써야겠다고 다짐한 계기죠.
제가 ‘탄소 일기’를 쓰며 얻은 몇 가지 교훈을 구독사원님들과 공유하고 싶어요. 먼저 전자제품 중 열이 발생하는 것이 에너지를 많이 사용해요. 드라이기, 전기매트, 다리미, 인덕션 같은 것의 사용 시간을 1~2분이라도 줄이면 꽤 많은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어요. 마찬가지로 찬물에 비해 따뜻한 온수가 에너지 4~5배 더 들어요. 샤워나 세탁할 때 물의 온도를 낮추고 시간을 줄이는 것이 에너지를 절약하는 데 많은 도움이 돼요. ‘한 끼 밥상 탄소 계산기’라는 사이트가 있는데요 내가 오늘 먹은 음식이 얼마나 탄소 배출을 했는지 쉽게 알아볼 수 있어요. 한번 해보세요! 애써서 전기, 온수 다 아꼈는데 소고기 육개장 한번 먹었다고 탄소 배출이 엄청 높아지는 걸 눈으로 확인하실 수 있어요.
14F 사원님들과
함께 공유하고 싶은 팁이 있다면요?
〈별일 아닌데 뿌듯합니다〉에 나오기도 했던 필(必)환경 시대 테이블 매너에 대해 설명해 드릴게요.
만약 물티슈를 써버리거나 반찬 거절을 못 하고 남겼더라도 괜찮아요. 식사라는 건 자주 반복되기 때문에 한 번 실패했다고 좌절할 필요가 없어요. 몇 시간 후에 또 기회가 있으니 다시 시도해 보세요!
마지막으로 구독사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남겨주세요!
‘나 혼자 노력해 봤자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라는 생각을 하실 수도 있어요. 그런데 제가 보기에는 세상은 분명히 바뀌고 있어요. 내 주변에는 아무도 안 하는 것처럼 보여도 전 세계적으로 많은 사람이 기후 위기를 걱정하고 있고, 이미 행동하고 있어요. 결코 적지 않은 사람들이 노력하고 있어서 느리지만 천천히 바뀌고 있다는 걸 저는 정말 실감하고 있어요. 꼭 제로 웨이스트, 꼭 채식이 아니어도 괜찮아요. 모두 처한 상황이 다르고 건강 상태도 다르잖아요. 하지만 내 몫의 지구 자원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지금처럼 모든 걸 다 누리면 지구환경에 문제가 생긴다는 걸 잊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마치 가계부를 쓰듯이 예산을 세워서 절제하며 소비하는 지혜가 필요해요. 가령 고기를 줄이기 어렵다면 대신 비행기 여행을 줄이거나, 제로 웨이스트가 어렵다면 자가용 대신 대중교통을 타는 식으로요. 모두 자신만의 자원과 탄소 예산을 적재적소에 낭비 없이 사용하는 슬기로운 지구인이 되어 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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