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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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전 일제가 파묻은 조선 왕의 길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은 조선의 수많은 문화재를 훼손했는데요. 특히 경복궁 내 전각을 무단으로 해체해 반출하거나, 조선총독부 건물을 가린다는 이유로 광화문을 옮기기도 했어요. 또한 광화문 앞 거리를 훼손하고 그 위에 전차 선로를 깔았는데요.🤬 선로 아래에 묻혀있던 조선 궁궐의 일부가 광화문 복원 사업으로 모습을 드러냈다고 해요!

찾았다 ‘월대’

경복궁은 조선왕조를 대표하는 법궁이죠. 그리고 지금의 서울 광화문 앞과 세종대로는 조선시대 왕이 행차하는 길이자, 여러 관청이 밀집한 거리였는데요. 1910년 조선을 빼앗은 일본은 경복궁 일부를 헐고 조선총독부 건물을 세웠어요. 조선 왕실을 상징하는 경복궁을 훼손하고 가려버림으로써 조선인의 자존심을 짓밟은 건데요. 또 경복궁의 정문인 광화문을 원래 위치에서 경복궁 동쪽으로 옮기고 그 자리에 조선총독부를 짓는 데 쓸 자재를 옮기기 위한 🚋철로를 설치했어요. 

지난 1990년부터 문화재청은 일제에 의해 변형되고 훼손된 경복궁의 역사성을 회복하고자 경복궁 복원을 위한 발굴조사를 진행하고 있는데요. 2007년 광화문 월대의 흔적을 처음 발견했고, 지난해 9월부터 광화문 인근을 발굴하던 중 월대의 모양과 크기를 확인했다고 밝혔어요. 🤴임금이 지나도록 만든 길인 너비 7m의 ‘어도’를 포함해 남북 길이 48.7m, 동서 너비 29.7m에 이르는 월대의 전체 규모를 확인하게 된 거예요.  

광화문 월대 유적 / 출처 : 문화재청

월대가 뭐G?

1866년 3월 3일에 쓰인 「경복궁 영건일기」에는 📜 ‘광화문 앞에 월대를 쌓았다. 모군이 궁 안에 쌓아둔 잡토를 지고 왔는데, 실로 4만여 짐에 이르렀다’라고 기록되어 있는데요. ‘월대’는 궁궐의 정전과 같은 중요한 건물 앞에 설치하는 넓은 기단 형식의 대(臺)로, 궁중의 각종 행사가 있을 때 이용됐대요. 경복궁 근정전, 창덕궁 돈화문에도 월대가 있지만 난간석(건축물을 울타리처럼 두르고 있는 석조 구조물)을 두르고 기단(건물을 짓기 위해 터를 다진 후 터보다 한층 높게 돌로 쌓은 단)을 쌓은 모양은 광화문 월대가 유일하다고 하는데요. 조선 초기부터 광화문 앞은 👑왕실의 주요 행사, 임금이 주재하는 과거시험 및 백성들의 억울함을 전하는 상언을 올리는 공간이었기 때문에 광화문 월대에서도 이런 것들이 이뤄졌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해요.

* 경복궁 영건일기 : 모두 9책의 필사본으로 1865년 4월 1일 ~ 1868년 7월 4일까지 3년 3개월 동안 경복궁 중건 공사 과정을 기록한 일기

일제가 파묻은 임금의 길 월대! 다시 돌아오다

문화재청은 이번 발굴 과정에서 1860년대 고종 년간에 월대를 처음 쌓은 뒤 1920년대 일제에 의해 묻힐 때까지 크게 4단계의 변화 과정이 있었음을 확인했다고 하는데요. 처음 만들어질 당시 남쪽에 3개의 계단이 있었던 월대는 중앙의 어도가 계단에서 경사로로 변했고, 이후 경사로의 범위가 확장되며 계단이 동·서 외곽으로 축소 변형됐대요. 이 시기에 단선 형태의 전차선로가🚋 설치됐다고. 그리고 전차선로의 복선화로 월대가 파괴되면서 난간석 등이 철거되고 완전히 땅에 파묻히게 된 건데요. 문화재청은 이번 발굴 조사 성과를 바탕으로 1920년대에 훼철된 이후 동구릉 등에 이전돼 있던 월대 부재를 🔁재사용하고, 전통 재료·기법을 적용해 월대를 복원할 계획이래요. 

광화문 월대 복원공사는 오는 10월 마무리될 예정인데요. 예전의 모습으로 되살아날 광화문의 모습이 벌써 기대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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